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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n 칼럼] 라멘 토핑과 자동차 디자인의 상관관계

모터그래프 로고: MotorGraph 모터그래프 2018.09.10. 12:11 김준선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유학으로 온 가족이 일본에 이주했을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와 시내의 쇼핑센터에 점심을 먹으러 갔지요. 덮밥종류를 시켰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일본에서의 첫 외식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때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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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렇게 반찬만으로도 진수성찬이 차려집니다. 하지만 일본의 식당에서 어머니와 제 앞에 차려진 건 주문한 덮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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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무지 고작 두어 개 였습니다. 반찬이라곤 달랑 요고 하나였던 것이죠. 당연히, 덮밥 몇 수저 만에 단무지는 금방 동났습니다. 단무지를 또 시켰습니다. 또 두어 개가 나오고, 순식간에 다 먹어버리니 다시 주문하면 또 두어 개가 나왔지요. 몇 번을 반복하다가 어머니가 종업원에게

"여기 단무지 좀 많이 주실 수 있을까요?"

라고 서툰 일어로 물었습니다. 그러자 종업원은 약간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단무지 서너 개를 갖다 주더군요. 두세 개에서 서너 개로 한두 개가 늘었죠. 그런데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저희만큼 단무지를 계속 시키는 손님이 없는 겁니다. 모두가 덮밥을 다 먹을 때까지 처음 주어진 고작 두어 개의 단무지로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별로 크지도 않은 단무지를 몇 번씩 잘라 먹으면서 말이죠. 아니면 유료인 반찬을 추가 주문해서 먹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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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저는 일본에서의 첫 외식에서 배웠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반찬이 공짜가 아니라는 것. 단무지 몇 조각 정도는 그냥 주기도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서비스'이기 때문에 두어 개 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

단무지를 두어 개 밖에 주지 않아 불평하는 게 아니라, 두어 개나 공짜로 주는 것에 감지덕지 해야 한다는 것. 일본은 사소한 것에도 존재가치를 크게 느끼는 큰 문화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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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초등학교부터 중학교를 거치며 5년 넘게 일본에 살고, 대학교를 졸업 후 또 일본에 건너가 수 년을 공부하고 일했습니다. 자동차 디자이너로 일을 했었지요. 이렇듯 제 평생의 1/4을 일본에서 살다 보니 이제는 그들의 그런 문화를 아주 잘 이해합니다.

좋게 표현하면

'아주 사소한 것에도 대가를 지불하고, 그것에 감사하는 문화' 이지만

나쁘게 표현하면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보다 야박한 문화'라고 할 수도 있죠.

풀 쪼가리 반찬 하나조차도 공짜로 안 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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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본음식 중 라멘을 아주 좋아하는데요, 여기서도 그들의 그런

'별거 아닌 것에 감사하게 되는'

문화가 느껴집니다.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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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라멘가게에 가면 꼭 이런 주문자판기가 있어요. 여기서 사람들은 라멘뿐 아니라, 라멘에 넣을 토핑도 고릅니다. 토핑은 물론 유료이기에, 숙주를 더 넣을 것인지, 멘마(라멘에 넣는 죽순)를 추가할 것인지 등 꽤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그런 유료 토핑 중에는 김도 있습니다. 네. 그 검은색 '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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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김 따위 별로 존재감이 크지 않은 반찬 중 하나입니다. 당연히 무료이고요. 횟집 같은 곳에서는 맛김을 무제한으로 가져다 먹으라고 그냥 쌓아두기도 합니다. 손님도 김 정도는 큰 감사함 없이 마음대로 가져다 먹지요. 확실히 우리나라에서 김이라는 반찬은 귀중함이나 가치를 크게 느끼는 대상은 아닌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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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본 라멘에서 접하는 김은 그 무게감이 사뭇 다릅니다. 야박하게도 보통 라멘 1인분에 김이 달랑 한 장 들어있을까 말까지요. 그래서 라멘을 후루룩 먹으면서 그릇 끝에 세워진 김을 계속 쳐다보게 됩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저 김을 어느 타이밍에 먹지?'

'면과 함께 한 방에 입 속에 넣을까? 아니면 잘라 먹을까?'

'역시 아까우니 두 번에 잘라 먹어야겠다. 아니 세 번?'

이런 생각을 하면서 김을 남겨두고 면을 먹어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타이밍에 김을 먹고 나면 굉장히 아쉽습니다.

'아... 김 먹어버렸다… 이제는 김이 없네…' 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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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음 번에는 주문 자판기에서 100엔 정도 하는 김 토핑을 몇 개 더 추가합니다. 그러면 드디어 라멘에 김이 여러 장 나오죠. 이왕 추가하는 김에 거금 몇 백 엔을 들여 차슈(고기)토핑도 몇 장 더 추가하고 시금치와 맛계란도 때려 넣습니다.

‘김이 여러장이라니! 차슈가 여러장이라니!’ 오늘은 매우 럭셔리한 날입니다.

한 장일 때와 달리 ‘김을 언제 먹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늘어난 김에 대해 굉장히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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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두 가지는 비록 단무지와 김이라는 별 거 아닌 예시였지만, 일본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우리처럼 별 가치 없이 무제한 제공되는 것들이 매우 적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널린 것들이 일본에서는 모두 소중한 대가를 지불하고, 귀중하게 얻어야 한다는 뜻이죠. 음식, 물건, 서비스, 등 모든 분야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더, 별 것 아닌 대상도 귀중하게 느껴지고 감사하게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겉보기엔 비슷해 보여도 조금만 깊게 들어가면 굉장히 다른데, 특히나 어떤 대상에 대해 귀중히 여기는 면은 크게 다른 문화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일본 경차 디자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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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20년 만에 풀모델 체인지 된 스즈키 짐니 입니다. 우리나라보다 전폭 12cm, 전장은 무려 20cm나 짧아야 하는 극한의 일본 경차규격 안에서 디자인된 차지요. 그러니까 사진에 보고 계신 짐니는 우리가 작다고 여기는 모닝이나 스파크보다 전장이 20cm, 전폭이 12cm나 더 작은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G바겐 같은 당당한 풍채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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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가 하고 싶은, 그리고 싶은, 만들고 싶은 모양이 있었을 텐데, 그 모든 욕심을 작디작고 빡빡한 규격 안에서 실현해야 했던 겁니다. 심지어 본격적 오프로더로서 프레임보디를 갖추면서까지 말입니다. 크기제한 없는 큰 차를 디자인할 때보다 라인 하나, 꺾임 하나도 더 세밀하고 정밀하게 컨트롤 해야 했을 겁니다. 1mm라도 규격을 벗어나면 안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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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타고 있는 S660도 마찬가지로 디자인이 매우 어려웠을 겁니다.

경량 미드십 로드스터로서 존재감 넘치는 멋진 디자인은 생명과도 같지요. 또한 멋진 스포츠카 디자인을 갖추려면 길쭉한 휠베이스와 널찍한 전폭이 필요하고요. 그러나 누차 강조하듯 일본의 야박한 경차규격은 그런 낭만적인 여유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딱 벌어진 어깨와 길쭉한 허리로 대표되는 스포츠카의 비례감을 말도 안 되게 작은 규격에서 실현해야 했지요. 그리고 그 결과로, 저렇게 빡빡한 규격 안에서 놀라울 정도의 비례감과 존재감 있는 디자인을 뽑아냈습니다. 라인 하나, 볼륨 하나를 정말 0.1mm단위로 세밀하게 컨트롤 해가며 최악의 규격 속에서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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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력도 마찬가지 입니다. 횟집에서 무제한으로 공급되는 맛김처럼, 한국 경차규격에는 출력제한이 아예 없습니다. 그러나 일본 경차는 고작 64마력이라는 자율규제가 있지요. 그보다 출력을 높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64마력이라는 빡빡한 조건 안에서 최상의 운동성능을 뽑아내기 위해 온갖 수법을 다 동원해야 합니다. 차를 더 가볍게 만들고, 동력성능의 반응성을 높이는 등등. 심지어 S660의 경우 시트포지션을 한계까지 낮춰 체감속도를 실제보다 높이려고도 했습니다. 시선이 낮을수록 실제보다 빨리 달리는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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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이하츠에서 경차를 디자인하고 있는 제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도 있습니다.

“만약 일본 경차규격이 한국만큼만 넉넉했다면, 우리는 경차 수퍼카 만들고도 남아”

마찬가지로 스즈키 짐니의 디자이너든 혼다 S660의 디자이너든, 디자인 작업 중에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허용 전폭이 1cm만이라도 더 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허용 전장이 10cm만 더 길었다면 얼마나 더 늘씬하고 멋지게 디자인할 수 있었을까!’

'한국만큼은 바라지도 않으니, 일본 경차규격이 지금보다 몇 밀리미터만 더 넉넉했더라도...'

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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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저는 또, 덮밥 단무지 먹을 때나 라멘 김 먹을 때 생각이 떠오릅니다.

'우리나라처럼 맛김을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냥 라멘에 김 몇 개만 더 넣어줘도 좋겠다.'

우리는 단순하기 그지 없는 78마력짜리 모닝을 우습게 여기지만,

일본인들은 경차출력제한이 78마력만 되어도 정말 매우 크게 감사할 것이에요.

우리는 전폭 1595mm짜리 경차 모닝을 작게 여기지만,

일본 경차 디자이너들은 모닝만한 전폭만이라도 허용된다면 S660을 지금보다 훨씬 멋지게 출시할 수 있었을 것이고요.

우리는 100마력짜리 모닝터보가 나와도 '좀 빠른 모닝 나왔나보다' 정도로 여기지만

일본에서 경차를 100마력으로 만들어도 된다고 허용하면 아마 올해의 톱뉴스 중 하나를 장식할 겁니다. 그러고선 100마력 가지고 정말로 경차 수퍼카를 만들지도 몰라요. 지금의 64마력 가지고도 충분히 재미있고 잘 달리게 만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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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야박한 사회 속에, 라멘에 추가한 김 한 장에도 감사하게 되는 마음.

아주 야박한 규제 속에, 그 속에서 뭐 하나라도 더 뽑아내 보려고 애를 쓰는 문화.

그러다 보니 이제 한국수준의 경차규격만 허용된다면 수퍼카라도 만들 기세를 갖춘 일본 경차 제작사들.

허용된 재원을 한계 끝까지 사용하는 그들의 저력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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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우리는 저들보다 훨씬 넉넉한 조건들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더 뽑아낼 수 있는 것들을 덜 뽑아내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에게 허용된 무제한 맛김과 무제한 반찬, 그리고 100마력짜리 모닝터보가 갑자기 감사해지는 오늘입니다.

by E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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