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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로 활기찬 제3의 인생 사는 이한국 씨]

2014-06-24

[해외봉사로 활기찬 제3의 인생 사는 이한국 씨]

"해외봉사는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라오스 비엔티엔에서 2년, 스리랑카 쿨리야피티야 3년, 스리랑카 엠빌리피티야에서 또 2년.

이한국(62) 씨는 2005년 이후 7년을 혈혈단신으로 동남아 국가에서 보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봉사단원으로 파견돼 현지 젊은이에게 자동차 정비를 가르쳤다.

내달 미얀마로의 네 번째 파견을 앞두고 서울 염곡동의 월드프렌즈교육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이씨는 2일 기자와 만나 "해외봉사를 간 것은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기능대학 자동차과를 졸업한 후 고향인 강원도 홍천에서 오랫동안 자동차 정비 관련 일을 하던 그는 취미로 하던 사진을 본업으로 바꿔 사진관을 운영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여행을 떠났다가 큰 감명을 받아 아시아 각국을 틈틈이 여행하게 됐고 "여행이 아니라 이들의 삶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러던 중 우연히 KOICA 봉사단원에 관한 정보를 접하고 아내 몰래 신청했다 합격했지만 "아내에게 크게 혼나고"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7∼8년을 설득했죠.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살았으니 내가 정한 정년 55세가 되면 내가 원하는 삶도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요. 오래 설득했더니 2005년 재도전할 때는 반대하지 않더라고요."

54세의 나이에 라오스로 파견돼 수도 비엔티엔의 한·라 직업훈련원에서 라오스 청년들에게 자동차 정비를 가르쳤다.

처음 하는 외국생활이었던 데다가 40명 정원에 170명의 학생이 몰려 오전·오후반으로 나눠 수업을 해야 했던 상황이라 두 배, 세 배로 힘들었다.

"처음에 워낙 고생을 해서 다시 나가겠다는 생각을 안 했죠.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지내다보니 학생들의 눈동자가 보고 싶더라고요."

현지 활동 평가도 우수했던 그는 그렇게 2008년과 2011년에 한 차례씩 스리랑카에 더 다녀왔고 올해 2월 돌아오자마자 다시 지원해 네 번째 임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 중 태어나 어려운 시절을 거쳐온 세대인 만큼 '도움을 주는' 입장이 된 기분도 남다르다.

"우리나라도 예전에 어려웠을 때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아 이렇게 잘살게 됐다고 그곳 학생들에게 늘 이야기를 해줍니다. 학생들이 '선생님' '선생님' 하며 의욕을 갖고 수업을 듣거나 수료 후 취업해 고맙다고 인사를 오면 정말 보람을 느끼죠."

아직도 연락을 이어가고 있는 현지인들과의 새로운 인연, 그리고 젊은 봉사단원과 교류하며 얻은 활력도 해외봉사의 또다른 선물이다.

그 덕분인지 염색하지 않은 머리만 빼면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인다.

그는 자신처럼 은퇴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나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해외봉사를 '강력 추천'한다.

"건강과 능력을 갖춘 시니어들이 개도국에서 자신의 기술과 노하우로 현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입니까? 그리고 젊은 사람도 현지에서 원조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자신의 역량을 펼쳐볼 기회가 되고요."

이제 혼자 김치, 깍두기를 담글 정도로 '개도국에서 홀로 살기'에 익숙해진 이씨에게 이번 미얀마 파견은 좀 더 특별하다.

이들, 딸이 모두 가정을 이룬 데다 제도가 바뀌어 이씨와 같은 시니어 봉사단원은 배우자를 동반할 수 있게 된 덕분에 한국에 남아 사진관을 운영하던 아내도 함께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내는 내년 초 졸업하는 대로 미얀마에 합류할 생각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해외봉사를 하려고 합니다. 조리사 자격증이 있는 아내도 저를 보며 해외봉사에 관심을 품게 돼 앞으로 부부 봉사단원으로 나가고 싶은 꿈도 있습니다."

mihy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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