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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광고 하나가 미국 사회를 둘로 나누고 있다

한겨레 로고 한겨레 2018.09.12. 16:30

2016년 10월 타임지 표지에 등장한 캐퍼닉

2016년 10월 타임지 표지에 등장한 캐퍼닉
© Copyright ⓒ The Hankyoreh.

요즘 미국에서는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연일 화제다. 지난주에는 나이키 운동화를 불태우는 영상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더니, 11일(현지 시간)에는 나이키 온라인 판매량이 급격히 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나이키를 강력히 지지한다거나, 불매하겠다는 엇갈린 관점의 이야기들이 매일 뉴스에 오르고 있다. 이 모든 이슈는 나이키가 브랜드 대표 슬로건인 ‘저스트 두 잇(Just do it)’ 30주년을 기념해 이달 초 내놓은 캠페인 광고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

나이키의 ‘Just do it’ 30주년 광고 영상

나이키가 지난 3일 공개한 ‘저스트 두 잇’ 30주년 광고 속 목소리의 주인공은 미국프로풋볼(NFL) 선수 콜린 캐퍼닉이다. 캐퍼닉은 미국 경찰의 흑인 과잉 진압이 논란이 된 2016년, 경기 시작 전 국가 제창을 거부하고 기립 대신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시작한 인물이다. 공권력에 대한 항의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캐퍼닉의 ‘무릎 꿇기’는 당시 소속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와 NFL을 넘어 프로야구, 프로농구로 확산했다. 백인 선수나, 심지어 구단 관계자들 중에도 시위에 동참하는 이들이 생겼다

백인 경찰이 흑인을 사살하는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무릎 꿇기’는 트럼프 정부의 인종차별 정책 기조에 반발하는 흑인 인구와 진보 성향의 시민들을 중심으로 뜨거운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에 못지않은 반발도 불러일으켰다. 보수 정치인들은 국가 제창 거부라는 상징적인 행동에 강한 거부감을 표현했고, 캐퍼닉이 사회 분열을 부추겼다고 비난하는 의견들도 등장했다.

이런 논란 때문일까. 이듬해인 2017년, 자유계약 선수가 된 캐퍼닉은 자신을 원하는 팀이 없어 선수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여러 논란에도 그가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과 불만을 사회적인 움직임으로 끌어올렸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타임]은 그를 2017년 올해의 인물 10인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며 “풋볼 선수인 캐퍼닉은 지난 1년 동안 경기는 1월1일 단 하루만 뛰었지만, 지난 11달 동안 그 어떤 스타 선수들보다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했다.

캐퍼닉은 현재도 새 팀을 찾지 못한 상태로, NFL 협회 소속 프로 구단주들이 공모해 팀 계약을 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소송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별말 없이 캐퍼닉과의 스폰서 계약을 유지해오던 나이키가 그를 광고 모델로 발탁한 것이다.

이번 ‘저스트 두 잇’ 30주년 기념 캠페인 광고에는 캐퍼닉을 비롯해 테니스의 서리나 윌리엄스, 농구의 르브론 제임스, 풋볼의 오델 베컴 주니어, 휠체어 농구의 메건 블렁크 등 유명 스포츠 선수들이 다수 등장한다. 이 쟁쟁한 스타들 가운데 이번 캠페인의 메인 모델이 된 건 캐퍼닉이었다. 그는 현재 이번 캠페인의 각종 옥외광고와 지면광고에 등장하고 있다. 나이키가 캐퍼닉의 사진과 함께 사용한 문구는 “모든 걸 희생해야 하더라도 신념을 가져라(Believe in something. Even if it means sacrificing everything.)”다.

콜린 캐퍼닉의 광고 이미지가 공개되자 인터넷은 당장 둘로 편이 갈려 설전이 벌어졌다. 캐퍼닉을 비난하는 소비자들은 나이키 제품을 불태우는 영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며 불매운동을 벌였다. 2년 전 캐퍼닉과 ‘무릎 꿇기’에 동참했던 선수들을 향해 “경기장에서 당장 내쫓으라”라며 비난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에도 트위터로 “나이키는 분노와 불매운동으로 완전 죽어가고 있다”, “나이키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나?”라는 글을 올렸다. 두 기독교 대학이 나이키 불매 방침을 홍보하는 등 단체 차원의 보이콧도 이어지고 있다.

9일에는 루이지애나주 케너시의 시장 E.B 잔이 스포츠용품 구매를 담당하는 부서에 나이키 상품 구매를 “예외 없이 중단하라”고 지시한 공문이 유출됐다. 잔 시장은 논란 이후 낸 공식 입장문에서 “신발과 정치적인 메시지를 함께 팔고 있다”, “납세자들의 돈이 정치적 캠페인에 이용되지 않도록 보호한 것”이라며 나이키의 마케팅에 정치적인 보이콧을 했다는 사실을 공식화했다.

시장의 입장에 찬성하지 않는다며 시의원들이 일부러 나이키 매장을 찾아 ‘구매 인증샷’을 찍어 올리는 등의 반발도 이어졌다. 시의원 제이 뱅크스는 사진과 함께 “평생 처음으로 나이키 물건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글을 올렸다. 또 다른 시의원 그레고리 캐롤은 "100% 반대한다"는 입장을 페이스북에 밝혔다. 케너시와 공항을 공유하는 이웃 뉴올리언스시의 라토야 캔트렐 시장도 “우리가 운영하는 공항과 관계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따로 내기까지 했다.

나이키는 여전히 NFL 팀들과 제품 계약을 하고 있다. 특별히 ‘정치적으로 옳은’ 경영을 중시해온 기업도 아니었다. 주 구매층인 청년층이 콜린 캐퍼닉을 지지하고 있다고는 하나, 나이키로서는 어느 정도 도박을 한 셈이다.

일주일이 지난 10일 월요일, 나이키의 동기간 온라인 매출 증가분이 예년보다 크게 높아졌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지난해 같은 주말에는 17%였던 증가율이 광고 공개를 전후한 올해에는 31%로 훨씬 높아진 것이다. 광고 공개 직후 급락했던 주가도 이날 캠페인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광고가 공개되고 사흘 후인 지난 6일, NFL의 2018/2019년도 시즌이 개막했다. 이에 따라 풋볼 경기장에서의 ‘무릎 꿇기’도 재개됐다. 9일 경기에 출전한 마이애미 돌핀스의 케니 스틸스와 앨버트 윌슨이 그 첫 주자였다. 캐퍼닉은 트위터로 이들을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 “내 형제들은 위협을 당한 후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들의 용기가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박수진 기자 sujean.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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