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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장관 뻥튀기'

조선일보 로고 조선일보 6일 전 신정록 논설위원
© 조선일보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외교관 경력을 주로 미국 쪽에서 쌓았다. 누구나 인정하는 에이스였다. 노무현 정권 때도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조정실장, 외교부 차관보로 잘나갔다. 그러나 노 정권 마지막 1년을 다시 청와대에 불려가 안보수석을 한 게 족쇄가 되어 다음 정부에서 5년을 쉬었다. 정권이 바뀌자 대사 자리 하나 내주지 않았다. 박근혜 캠프에 들어가 절치부심 5년, 차관을 건너뛰고 바로 장관이 되어 친정에 복귀했다. 그는 매일 새벽 2~3시까지 직원들을 붙잡아놓고 회의를 거듭했다. 후배들은 교황을 뽑듯 끝없이 하는 회의라는 의미에서 '콘클라베'라 불렀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나흘째인 지난 13일 김용호 벨라루스 대사가 이름을 걸고 외교부 내부 통신망에 글을 띄웠다. "퇴직한 선배 외교관들이 선거판에 끼어들어… 현역으로 다시 등장"이라며 '올드보이들의 퇴행'이라고 했다. 이 글은 해외 주재 포함 외교부 직원 2200여명 중 어제까지 1500명 이상이 볼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다 한다. 이 글엔 '콘클라베 밀실에 갇히지 말고'라는 표현도 있었다. 윤 장관으로선 정권 교체를 실감했을 것이다.

▶문재인 캠프는 지난 2월 전직 고위급 외교관 25명을 모아 '국민 아그레망'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정권을 잡으면 이 사람들을 쓰겠다는 뜻이었다. 외교부장관, 청와대 안보실장 등의 물망에 오르내리는 정의용 전 제네바 대사, 이수혁 전 독일 대사, 조병제 전 말레이시아 대사 같은 사람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도 김 대사의 글을 보고 뜨끔했을 것이다.

▶외교부뿐 아니다. 부처를 떠난 지 10년도 넘은 사람이 경제 부처 장관으로 복귀하거나, 심지어 서기관을 끝으로 떠났던 사람이 국회의원이 된 뒤 부총리가 된 일도 있었다. 공무원 출신 어떤 국회의원이 "가장 탐나는 것이 친정 부처의 장관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들었다. 자신에게는 '금의환향(錦衣還鄕)'이 되겠지만 후배들은 공무원 사회를 정치에 오염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역량 있는 퇴직 공무원들이 대선 후보를 도와 공약을 만들고 집권 구상을 가다듬는 것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필요는 없다. 대통령이 자기 사람을 장·차관에 쓰는 것도 크게 뭐라 할 수 없다. 외국이라고 다를 것도 없다. 문제는 조직에서 2~3류가 대선 캠프에 참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몸집을 뻥튀기해 갑자기 장관으로 가는 경우다. 한두 케이스가 아니다. 그런 장관들이 공무원들을 낙담케 하고 정치에 오염시킨다. 새 정부에선 그런 '올드보이'들이 얼마나 나올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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