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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 칼럼] '박근혜 거울방'에 대한 청와대의 불순한 침묵

조선일보 로고 조선일보 5일 전 최보식 선임기자
© 조선일보

한 일간지에서 익명의 민주당 관계자 입을 빌려 이렇게 보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바로 다음 날에 청와대 관저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이유는 '박근혜 거울방' 때문이었다. 실무진이 관저를 손보려고 들어갔는데 거울이 사방에 붙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 거울을 떼고 벽지로 마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때문에 취임 사흘이 지나서야 관저에 입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놀라운 뉴스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방으로 대형 거울에 둘러싸인 방에서 지냈다'는 식의 보도는 곧장 인터넷, 소셜미디어, 종편 방송 등으로 재생 확산됐다. 어떤 인사들은 여기에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해 "박근혜 거울방은 세상과 불통된 단절의 벽이며 숲 속의 얼음방" "호러 영화에 보면 거울 방 나오지 않나, 오싹하다" 등의 코멘트를 덧붙였다.

박 전 대통령의 스타일은 이런 조롱과 야유를 들을 만한 소지를 충분히 제공한 게 사실이다. 나는 언론인으로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비판해왔다. 이 때문에 힘든 적도 있었다. 최근에 청와대 관저 안에서 박 전 대통령과 함께 지낸 '청와대 요리연구가' 김막업씨의 얘기를 들었을 때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은 잠시, 속이 막힌 것처럼 갑갑했다.

"이분은 외부 일정이나 수석비서관 회의가 안 잡혀 있으면 안 나갔다. 종일 내실에만 있었다. 방 청소하는 1시간 반 동안에도 이분은 비켜주지 않고 노트북이 놓인 책상 앞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눕거나 조는 것을 못 봤다. 최순실과 3인방 외에는 사람 만나는 걸 워낙 싫어했다. '왜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됐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옥중(獄中)의 그는 이제 더 떨어질 데 없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스타일은 그와 확연하게 대비된다. 이제야 대통령 자리가 '정상'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새 출발 하는 정권에서 '구악(舊惡)'인 박 전 대통령을 더 자극적으로 다룰수록 환호와 박수 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최순실 사태가 터지면서부터 이미 그렇게 돼왔지만.

언론은 사회 분위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만만하고 비호감의 인물이면 너무 쉽게 '확인(確認)'의 고삐가 풀려버린다. 균형 감각이 무뎌진다. 사실의 전제하에서 비판받을 만한 몫을 비판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수도 있다. 민주당 관계자의 말을 인용 보도한 '박근혜 거울방'은 언론 매체마다 다투어 베끼면서 기정사실이 됐다. 대다수 국민은 대형 거울로 사면이 둘러싸인 방에서 생활했던 박근혜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 관저에서 살림살이를 해온 김막업씨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이분이 거처한 방에는 큰 거울이 없다. 화장대의 둥그런 거울과 세면장에 붙어 있는 거울밖에 없다. 외부 일정이 없으면 머리 손질이나 화장을 안 한다. 내실에서는 머리를 뒤로 묶고 두건을 쓰고 있다. 외부 일정이 있을 때만 미용사를 불러 미용실에서 손질받았다. 관저 안에 큰 거울이 있다면 운동실이 유일하다. 한쪽 벽면만 거울로 돼 있었다. 이 운동실은 원래 대통령 내실에 딸린 접견실을 개조한 것이다."

사방 벽에 대형 거울로 둘러싸인 '박근혜 거울방'은 없었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이 취임 다음 날 당장 관저에 입주하지 못한 것은 새로운 주인인 대통령 부부의 취향에 맞게 도배와 보수 교체 등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운동실을 접견실로 원상회복했으면 한쪽 벽면의 거울을 떼고 벽지를 발랐을 수 있다. 이는 정상적인 작업이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관저에 입주하기 전에 안가(安家)에서 열흘을 머물렀다고 한다.

하나의 가십으로 넘겨도 될 '박근혜 거울방'을 주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집권 여당이 된 민주당 관계자의 입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이제 '정보'를 쥐고 활용하는 쪽이다. 그 관계자는 왜 하필 '거울방'을 언급했을까. 다른 의도를 갖고 사실을 왜곡했거나, 아니면 자신도 잘못된 정보를 듣고 전했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청와대 측은 '거울방'의 사실 여부를 알 수 있는 입장이었다. 기자들이 문의했을 때 청와대가 한마디만 하면 금세 밝혀질 사안이었다. 청와대는 "노 코멘트"라고만 답했다. 수상한 침묵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더욱 '적폐 세력'처럼 보이도록 방치하는 듯한, 풍문이 사실로 굳어지도록 내심 즐기는 듯한 태도였다.

박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소통 부재로 세간의 루머를 키웠고 신뢰를 잃었다. 이를 반면교사 삼은 듯 문 대통령은 '공개' '투명' '소통'을 내세웠다. 청와대는 확실히 달라졌다. 청와대를 향해 제기되는 질문에도 친절하게 응답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거울방' 사례에서 보면 혹 그런 자세가 자신들에게 필요하거나 유리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대통령이 공정함을 잃으면 결국 어느 한 쪽 세력의 대통령으로 비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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