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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맥 1만원이라고요? 대기업·도매상 좋은 일, 식당만 덤터기"

중앙일보 로고 중앙일보 2019.04.25. 11:02 김영주 기자

참이슬을 보유한 하이트진로는 내달부터 출고 가격을 65.5원 올린다고 23일 밝혔다. [사진 하이트진로] © ⓒ중앙일보 참이슬을 보유한 하이트진로는 내달부터 출고 가격을 65.5원 올린다고 23일 밝혔다. [사진 하이트진로]

참이슬을 보유한 하이트진로는 내달부터 출고 가격을 65.5원 올린다고 23일 밝혔다. [사진 하이트진로]

'국민 소주' 참이슬을 보유한 하이트진로가 내달부터 출고가를 65.5원 올리겠다고 발표한 23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세종음식문화의거리(서촌) 상인들은 술렁였다. 맥주 '펍(대중 술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지난 1월부터 병맥주(500ml) 가격을 500원 올려 4500원 받고 있다. 단골 장사인데 또 올릴 수는 없는 일"이라며 "소주·맥주가 5000원 될거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가게는 그렇게 못할 것"이라고 고 말했다. 서촌의 유동인구는 넘쳤지만 김씨의 가게는 비어 있었다.

 

김씨의 가게에서 30m 떨어진 또 다른 맥주 펍도 그 시간까지 마수걸이 손님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업주는 "손님들 눈치가 보여 마음대로 가격을 올리지 못한다. 제조사와 도매상은 득을 보겠지만, 결국 우리같은 작은 업소가 떠안게 돼 있다"고 말했다.  

 

오비맥주 카스 광고. [사진 오비맥주] © ⓒ중앙일보 오비맥주 카스 광고. [사진 오비맥주]

오비맥주 카스 광고. [사진 오비맥주]

참이슬에 앞서 오비백주는 이번 달 초 카스 가격을 56원 올려 출고가는 1157원에서 1203원이 됐다. 여기에 주류 도매상 마진을 붙여 업소·소비자로 유통된다. 김씨는 "이번주부터 카스 1박스(20병) 가격이 3만7000원에 들어오고 있다. 지난달보다 2000원 오른 가격"이라고 했다. 1병당 1750원에서 1850원으로 100원 오른 셈이다. 제조사가 출고가를 56원 올리자 도매상은 마진 44원을 더해 이득을 취한 반면, 업주의 부담만 올라간 꼴이다. 카스의 시장점유율 46%(유로모니터 조사 기준)에 달한다.  

 

이날 중앙일보가 서촌 맥주 펍과 한식당 11곳의 소주·맥주 가격을 조사한 결과 지난달 카스 인상 후 가격을 올려받은 가게는 한 곳뿐이었다. 나머지 10곳 중 5곳의 펍은 병당 4500원, 한식당 5곳은 4000원으로 기존과 같았다. "매출이 떨어지고 있는데, 술값을 올리면 손님이 더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게 한결같은 이유다. 반면 11곳 모두 "이번 달 카스 매입 가격은 박스당 2000원씩 올랐다"고 말했다. 소주 1박스(20병) 공급가는 약 3만4000원이었다. 맥주 가격을 4000원에서 5000원으로 올린 한 곳은 서촌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대중음식점으로 단체 회식이 많다.  

 

30~40대 젊은 업주들은 가격 인상 시 부닥치게 될 소비자 저항에 더 민감했다. 화로구이집을 운영하는 이모(35)씨는 "오늘 포털사이트 댓글 반응을 봤다. '소맥' 1만원(소주·맥주 각 5000원이 될 경우) 시대가 된다고 난리가 났더라"며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소주 한 병을 5000원 받을 수 있겠나"고 했다. 이어 "가격 인상은 상인회 차원에서도 얘기하는데, 누구도 그런 말이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씨의 가게는 서촌에서 맛집으로 통한다. 하지만 "1월까진 괜찮았는데, 2월부터 월 매출이 1000만원 이상 떨어졌다"고 했다.  

 

다른 업주 김모(30대 후반)씨는 "제조사는 원부자재 가격이 올라 출고가를 올렸다고 하는데, 소주의 경우 최근에 도수가 내려가지 않았나. 그렇다면 원가가 내려간 셈이니 가격을 내려야 정상"이라며 "자기네 매출이 떨어지니 장사하는 사람들한테 부담을 떠넘기려는 대기업의 횡포"라고 말했다.  

 

◆ 오비·하이트진로의 기습 인상, 왜 그랬을까  

맥주·소주 시장의 절반을 점하고 있는 오비맥주·하인트진로의 가격 인상은 기습적이다. 기존에는 한 달 전에 예고했지만, 이번엔 모두 1주일 전에 발표했다. 특히 기재부 등 정부가 내달 초 주세 개편안 발표를 앞둔 시점이라 업계는 의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업계는 주류 세제가 기존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뀌게 되면 도수가 낮은 맥주의 세율을 낮아지고, 소주는 소폭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앞서 기재부는 "소주는 서민의 술인 만큼 가격이 오르지 않게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나서 '국산 맥주와 소주의 영업환경 개선에 나서겠다'고 하는 판에 미리 가격을 올린 셈이다. 문정훈 서울대 푸드비즈랩 교수는 "수익 구조 개선을 위해선 정부 눈치도 안 본다는 것 아니겠냐"며 "한편으로 그만큼 시장이 어렵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7년 맥주 판매량은 21억9600만 리터로 2015년(21억4300만)보다 3%가량 줄었다. 같은 기간 소주 판매량은 4%가량 줄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참이슬은 최근 도수를 두 번이나 내려 17도가 됐다. 더 내리면 소주라고 할 수 없으니, 이번에 가격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하이트진로는 지난달 새 맥주 '테라'를 출시하며 쏟아부은 마케팅 비용을 소주로 만회하려는 뜻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트진로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4.8%로 2017년보다(4.6%) 나아졌다.  

 

소매점의 저항도 예상된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대형 음식점의 경우 1000원 올려도 문제없겠지만, 작은 가게의 경우 옆 가게와 경쟁 때문에 가격 인상이 쉽지 않다"며 "사회적 합의 없는 기습적인 가격 인상은 상도덕에 어긋난다. 업소의 반감을 커지면 불매운동으로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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