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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아시아 순방서 전혀 언급되지 않은 한 가지… ‘인권’

국민일보 로고 국민일보 3일 전 태원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간의 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했다. 14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귀국길에 오르기 전 기자들과 만나 “엄청나게 성공적(tremendously successful)”이라고 자평했다. 그가 열거한 ‘성과’는 주로 무역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3000억 달러(약 335조원) 규모의 거래가 체결됐다”고 강조했다.

지난 5일 일본을 시작으로 한국 중국 베트남에 이어 필리핀까지 5개국을 방문하며 그는 많은 이슈를 다뤘다. 북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절제된 모습을 보였다. ‘G2' 경쟁상대인 중국과 새로운 관계 설정을 시도해 ‘윈-윈’이란 평가를 얻었다. 가는 곳마다 ‘공정한 무역’을 강조하며 많은 미국 무기와 상품을 팔았다.

그런데, 외교·안보부터 경제·통상에 이르기까지 정상들이 만났을 때 꺼내야 할 많은 이슈 중 유독 한 가지가 트럼프 대통령 순방 기간에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그것은 ‘인권’이었다.

냉전시대 이후 미국 대통령은 세계 각지를 방문할 때마다 ‘가치’를 꺼내 들었다. 민주주의와 인권은 미국 대통령의 외교 발언에 빠지지 않고 담기는 메시지였다. 군사력과 경제력을 넘어 미국이 생각하는 가치를 전파해 국제사회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목에서 역대 미국 대통령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 인권을 말할 기회는 많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순방에서 인권 문제를 의제로 꺼내들 기회는 많았다. 중국은 미국이 인권을 문제 삼을 때 항상 지목되는 국가였다.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언론와 미디어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여전하다. 반체제 인사 탄압 문제도 그다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필리핀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을 통해 악명 높은 ‘인권 무시 국가’가 됐다. 대통령이 대놓고 마약사범에 대한 ‘살인’을 말한다. 아세안에 속해 있는 동남아 각국은 이와 비슷한 인권 문제를 하나씩 안고 있었다. 아웅산 수치의 미얀마는 로힝야족 사태로 국제적 비난을 받는 중이고, 베트남도 반체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한 미혼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해 물의를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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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회담, 어떤 연설에서도 이런 문제를 꺼내지 않았다. 두테르테 대통령과 매우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눈 장면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두테르테는 지난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자 ‘욕설’로 답했던 인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같은 문제를 제기할 경우 똑같이 해주겠다”고 벼르던 터였는데, 트럼프는 회담 중 인권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공동성명에 아주 ‘희미한’ 한 줄이 들어갔을 뿐이다.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는 반대파 정치인들을 투옥하고 야당을 와해시키며 정부 비판 활동을 벌여온 국제 NGO들을 추방했다. “미국이 나를 몰아내려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캄보디아 주재 미국 대사는 이런 행태를 “황당한 일”이라며 공개적으로 비난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그런 훈센 총리와 엄지를 치켜들고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 트럼프 대신 트뤼도가 나섰지만…

국제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Human Rights Watch)의 아시아 담당자 필 로버트슨은 “동남아에서 인권이란 어젠다는 정권이 독재화하는 것을 막고 야당과 NGO의 활동 반경을 넓혀주는 역할을 해 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순방에서 인권 이슈가 실종된 상황은 이런 기능에 큰 구멍이 뚫렸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인권에 침묵하는 동안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이를 강하게 언급했다. 필리핀의 비사법적 사형을 문제 삼고, 대규모 난민이 발생한 로힝야족 사태를 정면으로 거론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역시 로힝야족 문제를 지적하며 아세안 차원의 관심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에는 미국 대통령의 메시지만큼 강한 힘이 실리지 못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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